자는 장경, 호는 적수, 홍포거사로 닝보사람이다. 명나라때의 문학가이자 희곡작가이다. 만력 5년 진사에 급제했고 관직은 예부주사, 낭중에까지 올랐다. “명사”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태어날때부터 비범한 재주를 갖췄다고 하는데 필만 들면 수천구의 문장이 절로 흘러나왔다. 왕세정은 그에 대해 “시는 천작의 극치가 보이고 문장은 수려함이 흘러넘친다”고 평했다. 성격이 호방하고 시와 술을 즐겼다. 그는 “중흥 5자”의 일원으로 꼽힌다. 그가 창작한 “채호기”, “담화기”, “수문기”는 한때 크게 유행되었고 경성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는데 지명도와 영향력에서는 탕현조를 초월했다. 전문가들의 고증에 의하면 “금병매”의 작가 난릉소 소생의 진실한 신분은 바로 도륭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