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주는 월호중부 네개 주(洲)의 최남단에 위치해 있다. “몇 군데에 푸르른 대나무 심었더니 얼마 안되어 벌써 고인의 풍채 품었네”죽주는 원래 송도라 불렀다. 남송의 승상이었던 사호가 진은관을 지은뒤부터 죽주로 개칭했다. 송나라시기에는 누욱이 학문을 전파하는 학당, 금조당, 왕씨의 주금당, 사씨의 진은관, 사명동천, 사소사의 저택, 죽주 삼선생 서원 등 유적을 남겼고 명나라 때에는 육강희의 사당, 전씨의 별장 등으로 사용되었다. 북송 경력연간, 왕안석은 누욱 등 “경력 5인”을 초청하여 현학에서 학문을 전파하도록 했는데 그뒤 누욱은 송도에서 여러 해 동안 학문을 가르쳤다. 누욱의 5세 후손인 누약은 여기에 유명한 장서누각인 동루를 지었다. 남송시기, 승상이었던 사호는 죽주에 진은관과 사명동천을 지었는데 송고종과 효종, 광종은 선후하여 “무봉진은(鄮峰真隐)”, “진은(真隐)”, “사명동천(四明洞天)” 등 글자를 써 하사했다. 청나라 광서연간 지부였던 종원한도 여기에서 변지서원을 세웠고 민국연간에는 은현 현립여자중학교가 세워지기도 했는데 지금은 닝보제2중학교 소재지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