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초주는 월호의 네개 주(洲)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다. “못에는 봄물 가득하고 꽃과 풀은 끝없이 우거졌네” . 방초주는 또 벽지라고도 불린다. 송나라 때에는 벽지정, 사수지의 별장, 양자호의 서원, 사문경의 서당으로 사용되었고 명나라시기에는 범사마 사당 등 유적을 남겼다. 남송시기 승상이었던 사호는 국화주에 자택을 짓고 방초주에 서당을 지어 “경력의 5인”중 으뜸으로 꼽힌 양간을 초청하여 학문을 전파했다. 그뒤 사호의 손자인 사수지는 벽지를 양간에게 양도하여 학당을 세워 학문을 전파하도록 했다. 양간은 중국의 심학(心學)을 위로는 육구연을 잇고 아래로는 왕양명을 틔워준 인물이자 남송시기 절강성 동부 심학의 대표주자이다. 사수지의 벽지장서누각과 누약의 죽서 장서누각은 쌍벽을 이루고 있다.이를 일러 “장서의 풍부함은 남쪽의 누씨와 북쪽의 사씨를 보아야 한다”고 한다.방초주에는 현재 망호각, 방초거, 벽지정이 있는데 1998년 월호를 다스릴 때 복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