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경

게시:2017-06-15 보기:

    아아한 사명산에 도도한 삼강, 여기는 물과 인연이 닿아 흥했던 유구한 역사의 도시이다.
   당나라 장경원년(821년), 닝보, 고명주와 삼강구에는 7천년 하모도(河姆渡) 문화의 맥을 이어가면서 도시가 일떠서기 시작했고 이 도시에서 만리길 해상 실크로드의 시발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때로부터 또 천년 세월이 흘러 오늘의 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물가의 도시, 동방의 대형 항구가 있게 되었다.
   해와 달이 있어 밝음이 있다고 했다. 당나라 태화7년(833년), 무현의 현령이었던 왕원위는 타산언제를 쌓아 장계의 물을 동쪽으로 끌어들였으며 일호와 월호 두개 호수의 물을 모아 홍수와 가뭄을 방지하고 성내의 식수를 해결했다. 왕원위는 물을 넋으로 한 이 도시의 맥을 힘차게 뛰게 했으며 월호의 풍아가 형성되도록 하는데서 전기적인 장절을 써가기 시작했다.
   아득히 먼 지난날의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은 아직도 호수의 물과 물가의 푸르른 기와속에서 흐르고 있는듯 하다. 또 여기는 수없이 많은 문사와 묵객들이 머물면서 떠나기를 아쉬워했던 곳이다. 당나라의 시인이었던 하지장, 북송의 명신 왕안석, 증공, 서단, 남송의 재상이었던 사호, 학자였던 양간, 왕응린, 맹나라의 범흠, 풍방, 청나라초의 사학대가였던 황종희, 만사동, 전조망 등 인물들은 모두 여기서 거주하며 시를 읊었고, 사명의 문단을 휘잡으면서 불후의 명편들을 써냈으며 종당에는 십주의 절경속에는 “절강 동부의 학문”이 어려있다는 천하의 명성을 이룩했던 것이다.
   월호의 서안에는 명나라시기 병부 우시랑이었던 범흠이 “천일이 물을 낳고 지육이 그것을 이룬다”는 이념으로 지은 천일각이 있다. 천일각은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랜 사인 장서루로서 여기에 4백여년간 솟아 끊기지 않는 책향기와 문맥을 자랑해 왔다. 세세대대의 독서인들은 백절불굴의 풍골로 역사문화의 명도시에 있는 이 장서루에 장서고금의 저력을 부여해왔다.
   천년의 부침속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천일각·월호는 시종 도시의 문화분야에서 최정상에 위치했으며 문화자원이 가장 밀집된 구역으로 되어 왔다. 오늘날 닝보는 천일각·월호 관광지를 핵으로 국내에서  유일무이한 장서문화, 창의문화, 레저오락을 일체화시킨 종합성 5A급 관광지를 구축하는데 전력하면서 옛도시의 역사에 짙은 필묵으로 새로운 장을 쓰려 하고 있다.
   유구한 옛성속에서 역사는 유유히 흐르고 있다. 번화했던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호수의 풍아속에서 문화의 운치 또한 여유롭게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