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심사 옛터

게시:2017-05-03 보기:



       청나라시기의 건물로서 시급(市級) 문물보호단위로 후세에는 월호암으로 불리웠고 청나라 동치연간(1873년) 보수 (補修)를 진행한적 있다. 역사적으로 호심사는 “수륙명도원”이란 별호도 갖고 있다. 북송시기 치평(治平)원년부터 치평4년(1064-1067)간 건설되기 시작하여 희녕(熙)원년(1068년) 송신종으로부터 수성원이란 이름을 하사받았다. 남송 소흥32년(1162년) 송고종으로부터 “호심광복사”란 편액을 하사받은 뒤 수차례의 흥망을 거듭했다. 명나라 가경33년(1553년) 병부상서 장시철()이 정계에서 은퇴한뒤 호심사를 사들여 사인서원으로 쓰면서 보륜당으로 개건했다. 일본의 승려 회화대가였던 셋슈(雪舟)가 자신의 작품인 닝보부도에 호심사를 그려넣으면서 호심사는 일본에까지 알려졌다. 현존하는 건물은 다섯개 방에 두개 문이며 부지면적은 근 5백제곱미터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