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서

게시:2017-05-03 보기:


       화서는 월호의 중심부에서 가장 큰 섬으로서 십주 중의 으뜸으로 꼽히고 있다. “그윽한 향기 속에 나비도 취하니 자홍색 꽃바다 속에 앉아 시를 읊어보네”. 여기는 옛적에 호심사, 십주각, 등휘각, 창주각, 원충신의 사당으로 사용되었고 명나라시기에는 장씨의 월호 저택, 보륜당으로 사용되었으며 청나라 때는 월호암, 원씨 저택으로 사용되었다. 화서는 동쪽으로는 월도, 서쪽으로는 연서와 이어졌고 중부에는 두개의 다리가 놓여져 있는데 각기 호심동교와 호심서교로 불리며 북송시기 원풍연간에 세워졌다. 현존하고 있는 동교가 바로 유명한 월호교로서 청나라 건륭연간에 다시 구축된 것이다. 화서는 북송시기 불교사찰인 호심사가 세워졌는데 명주의 4대 사원중의 하나였다. 명나라의 병부상서였던 장시철은 호심사를 월호 저택과 보륜당으로 고쳤는데 월호암은 바로 보륜당의 유적지이며 지금은 일본의 화성이었던 셋슈(雪舟)의 진열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청나라시기의 건물인 원씨 저택은 오관중의 명화인 “제비 한 쌍(雙燕)”도의 모티브로서 지금은 닝보 차문화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