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각이 세워지기전 범흠의 장서실로 이용되었던 곳이다. 범흠(1506년-1585년)은 자가 요경, 호는 동명이기에 이 장서실을 “동명초당”으로 명했다. 여기는 또 “일오려”로 불리기도 한다. 여기는 천일각 구축의 첫발을 떼었던 곳으로서 여기에서 장서의 4백여년간의 누적과 견지가 시작되었다.
원래는 범씨 저택의 동쪽대청으로 쓰이다가 후에는 범씨 후손들의 거주지로 되었다. 높은 담벽으로 둘러싸인 천일각 장서루밖에 위치한 이 저택은 생활구역과 장서구역을 서로 갈라놓았는데 범흠이 장서를 보호하기 위한 고심이 보이는 곳이다. 현존하는 이 건물은 청나라 도광9년(1829년)에 재건한 것이다.
20세기 80년대에 건축된 것으로 천일각의 제2대 장서창고로 쓰였다. 현대적인 진열방식으로 보서루 2층의 전통 배치형식을 관객들에게 펼쳐보이고 있다.
여기는 보서루라고도 불리는데 명나라 가정40년부터 45년(1561년-1566년)사이에 구축되었다. 여기는 명나라 병부 우시랑이었던 범흠의 장서루로서 우리 나라에서 현존하는 장서루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사인 장서루이다. 범흠은 정강성이 주해를 달았던 “주역”판본 중의 “천일이 물을 낳고 지육이 그것을 이룬다”는 설을 따서 장서루의 이름을 지었는데 물로써 불을 막으려는 뜻을 띠고 있다. 윗층은 원룸식 구조이며 아랫층은 6개 방으로 나뉘었으며 누각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