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급(市級)문물보호단위로서 현제 관사박물관이기도 하다.청나라 도광3년(1823년)에 지어졌는데 건물은 북쪽에 자리잡고 남쪽을 바라보는 구조로 지금은 앞뒤 3채 건물의 규모만 남았는데 주로 현관, 중앙 대청, 중앙 청사, 후당, 동쪽과 서쪽의 사랑채인 상방(廂房)으로 2천여제곱미터 부지면적 규모로 닝보지역에서 가장 완전하게 보존된 청나라시기 민가중의 하나이다. 은대제의 주인 동괴(童槐)는 청나라 가경연간에 “통정사 부사”, “통정사” 또는 “은대”라고도
구급(區級) 문물보호단위로서 닝보시에서 현존하는 명나라시기의 주택건축중 규모가 가장 크고 보존이 가장 완전하다. 부지면적은 약 2442제곱미터로 범중암(範仲淹)의 제17대 후손인 명나라시기의 범억((範億))이 지었다. 이 건물은 남북방향의 중축선을 따라 지어졌는데 앞뒤 3개의 대청과 좌우 상방(廂房)으로 구성되었고 규모가 비교적 큰 “日”자형의 목조건축군이다. 외곽의 골마루와 중간대청, 뒷건물의 마루는 “月”자형을 이루었다. “日”자와 ”月”자를 합치
명나라시기의 건축물로 구급(區級) 문물보호단위이다. 문루, 앞대청, 중간대청, 뒷청사에 동서 양켠의 상방(廂房)으로 구성되었다. 여기는 원래 송나라때의 사씨가문의 세록건물이었는데 원나라말 명나라초때부터 방국진(方国珍)의 형제인 방국영(方国瑛)의 응접건물로 씌였다. 명나라 가경년간(1522-1566) 귀주의 포정사인 장연(張渊)이 여기에 자택을 지었는데 건물앞에 대방악제(大方岳第)라는 글자가 새겨진 패방이 세워져 있었기에 이 이름으로 불려졌으며 장방악제(
북송시기의 정화(政和)7년(1117년) 명주 지주 누이(樓異)는 휘종황제의 어명에 따라 명주에 고려사를 세웠고 월호의 국화주에 국가급 영빈호텔인 고려사행관을 지었다가 후에는 폐관되었다. 남송시기 재상중에서는 처음으로 닝보태생이었던 사호(史浩)가 국화주의 고려사관 옛터위에 수악부를 지었고 그뒤쪽에 보규정사(진규각)을 지엇다. 그뒤 여기에는 또 토지묘를 지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까지 전해내려오는 보규묘이다. 1999년 보규묘와 보규건축군의 부분적인 건물은